투자계약서에 서명하기 전에 - 오지큐 사태의 진짜 교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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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이모티콘과 이미지, 음원 등 디지털 저작권 자산을 거래하는 콘텐츠 플랫폼 스타트업 오지큐(OGQ)는 국내 최대 이미지 플랫폼인 게티이미지코리아 인수를 추진했다.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해 신기술사업투자조합을 통해 종류주식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약 9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고, 투자계약서 제18조에는 명확한 조건이 달렸다.
"투자대상기업 및/또는 이해관계인은 투자금을 게티이미지코리아 및 이매진스 인수 목적으로 사용하여야 하며, 해당 인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투자금을 지체 없이 투자자에게 상환하여야 한다."
신철호 대표는 회사의 대표이자 이해관계인 자격으로 이 계약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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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큐는 2022년 6월 게티이미지코리아 측에 인수협상 종료 의사를 전달했고, 투자조합은 이후 회사가 아닌 신 대표 개인을 상대로 투자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이 잇따라 투자자 측 손을 들어줬고, 2026년 4월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판결은 최종 확정됐다. 원금 90억 원에 연 12%의 지연손해금이 붙어 신 대표 개인의 부담액은 현재 약 120억 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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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결이 알려지면서, 스타트업 업계가 들끓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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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계좌에 투자금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대표 개인이 120억 원의 채무를 지게 됐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냉혹한 투자사를 비난했고, 불균등 감자에 동의하지 않는 기존 주주들을 욕했다. 신 대표 본인도 "계약 어디에도 대표자 개인의 연대보증이라는 표현은 없었다"면서 "이해관계인이라는 명목으로 제 개인이 계약 당사자에 포함됐고, 이 조항이 모든 일의 출발점이 됐다"고 했다. 분노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태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들여다보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악의의 결과가 아니라 무지의 결과에 가깝고, 비난의 화살이 향해야 할 곳도 투자사나 주주가 아니라 다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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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출발점을 이해하려면, 투자와 대출이 법적으로 얼마나 다른 개념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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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의 투자사는 사실상 대출을 하고 싶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인수라는 명확한 단일 목적이 있었고, 인수가 무산되면 돈을 그대로 돌려받고 싶었다. 원하는 것만 놓고 보면 이것은 전형적인 목적형 대출의 구조다. 그런데 계약의 형태는 지분 투자였다. 주식을 대가로 자금을 넣는 순간, 그 돈은 더 이상 투자사가 마음대로 회수할 수 있는 성격의 돈이 아니게 된다.
상법은 지분 투자로 들어온 자금에 대해 엄격한 원칙을 적용한다. 특정 주주에게만 투자금을 돌려주는 것은 주주평등의 원칙에 정면으로 반한다. 상환주식이라는 구조를 미리 설계했다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상환주식의 상환은 배당가능이익의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고, 그 재원이 없으면 상환 자체가 불가능하다. 자기주식 취득 방식으로 우회하려 해도 마찬가지로 배당가능이익과 상법이 정한 제한적인 취득방법의 벽에 막힌다. 처음부터 대출로 구조를 짰다면 애초에 생기지 않았을 얽힘들이, 투자라는 형식을 선택한 순간 한꺼번에 피할 수 없는 것들이 되어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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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사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단순한 이자 수익보다는 향후 IPO 시 얻을 수 있는 자본이득이 훨씬 매력적이었을 것이고, 인수가 무산될 경우 대표 개인의 상환의무를 계약서에 명시해두면 원금 손실 리스크는 충분히 헷지된다고 믿었을 것이다. 대출의 안전함과 투자의 수익성을 동시에 가져가려 한 것인데, 그 두 가지가 법적으로 양립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았다. 오지큐 입장에서도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담보가 부족한 스타트업이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에 달하는 자금을 1금융권 대출로 조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고, 부채비율을 높이는 대출보다는 자본을 확충하는 투자 유치 형태가 기업가치 제고에 훨씬 유리하다. 당시 누적 투자 규모가 1,000억 원을 넘을 만큼 탄탄하다고 자부했으니, 설마 상환이 문제가 되겠냐는 낙관이 작동했을 것이다. 양측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선명하게 보이는 상태에서 서명대 앞에 섰고, 계약서 이면에 조용히 도사리고 있던 구조적 모순은 누구도 정면으로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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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창업자와 투자사가 현실에서 대등한 협상력을 가진 관계가 아니라는 것은 업계에 몸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그러나 법원은 그 현실의 비대칭을 계약 해석에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법원이 보는 것은 동등한 사인 간에 자유의사로 체결된 계약이고, 그 계약서를 검토하고 서명을 한 이상 사후에 조항이 가혹하다는 항변을 하는 것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계약의 자유는 언제나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동반하고, 그 책임은 서명한 사람이 지는 것이 원칙이다. 협상 테이블에서 불리한 조항을 걷어내지 못했다면, 그것을 바로잡을 기회는 서명 전까지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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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P 등 기존 주주들이 불균등 감자에 동의해주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시각도 있는데, 이 부분도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주주들에게는 불균등 감자에 동의해야 할 법적 의무가 없다. 오히려 회사인 주주의 경우, 이사회는 자사 주주들에 대한 선관주의의무를 진다. 회사의 재산을 감소시키는 결정을 내리면서 그에 합당한 반대급부나 경영상 합리적 이유 없이 특정 대표의 개인 채무 변제에 동의하는 것은, 오히려 선관주의의무 위반이나 배임의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주주들이 동의하지 않는 것이 냉혹한 것이 아니라, 동의하는 것이 법적으로 더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대법원이 90억을 대표 개인의 빚으로 확정한 이상, 그들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비난 받을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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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외형을 빌린 대출을 하고 싶었던 투자사와, 그 구조가 품고 있는 법적 리스크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서명한 회사와 대표, 양측 모두가 법률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결과다. 투자사가 처음 의도한 대로 인수조건부 대출이라는 명확한 구조를 택했거나, 오지큐 측이 계약서의 독소 조항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협상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상당 부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가지 모두 계약 초기에 제대로 된 법률자문이 개입했다면 충분히 잡아낼 수 있었던 문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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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딜 구조와 투자 유치 금액이 뉴스를 장식하는 동안, 정작 그 계약서 안에 조용히 들어앉아 있던 한 줄짜리 조항이 수년 뒤 모든 것을 뒤집어 놓았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이 사태에서 건져야 할 교훈은 어렵지 않다.
투자를 받기 전에, 그 돈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먼저 정확하게 정의하라.
그리고 그 정의에 맞는 계약 구조를 갖추었는지를, 서명하기 전에 반드시 검증하라.
흥분된 협상 테이블에서 놓치기 쉬운 것들을 짚어주는 것이, 법률자문의 존재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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